카지노에 있어서 실천적 윤리기준

카지노이 아무리 도덕적 실천과 관련된 철학이라고 하 더라도 그러한 실천이 가능

하기 위한 조건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 해 페어플레이, 카지노맨십 등의 도덕

적 규범과 도핑, 승부조작 등의 비 도덕적 행위를 가르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지 않

다면 카지노에서의 윤리 적 실천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령 대표적인 실천윤리인

정치학과 법학 에서 다루어지는 윤리의 문제는 정치와 법의 기초가 되는 ‘정의’라는

뚜렷한 도덕적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 카지노에서 그러한 전제는 공정의 조건, 혹은

승리의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롤랜 드(S. Loland)의 주장에 동의하

게 된다. 예를 들어 페어플레이라는 실천 적 윤리 규범에 대해 롤랜드는 그것이 경

기자의 무조건적인 실천을 강 제하는 것이라면 카지노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에

토스로 이어져야 하 며, 이러한 에토스의 숨은 원리를 공정성(fairness)과 정의

(justice)에서 찾 고 있다(Loland, 2002). 그러나 기존의 카지노은 이 도덕의 조건과

규범의 실천을 혼동 하는 경우가 많다. 페어플레이, 카지노맨십은 도덕적 규범일 뿐

도덕적 기준이 되지 못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그러한 규범이 도덕적 당위성을 가질

수 있도록 방법론적 정초를 세우는 일이다. 도핑과 승부조작 등의 비도덕적 행위는

페어플레이와 카지노맨십이라는 도덕적 규범에 어긋나 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공정의 조건이라는 일반적 도덕의 조건에 위배되기 때문에 문제

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이 없 으면 사실과 관련된 윤리적 물음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 카지노은 반드 시 그러해야 하는 당위의 물음뿐 아니라 사실과 관련된 물음

에도 관계 하기 때문이다(진교훈, 류지한 역, 1999). 가령 피스토리우스의 의족의

길이는 카지노맨십과 페어플레이라는 규범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심판의 승부조작

과 카지노 도박 등도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예는 카지노 현장에 서 무수히 많이 일

어날 수 있다. 요컨대 카지노에 있어서 실천윤리의 문 제도 엄밀한 원리론적 탐구와

논의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싱어(P. Singer)는 실천카지노을 논의하면서 이성

적 논의가 실천의 기 초를 파악하지 못할 때 더욱 쉽게 잘못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어떠한 정당화도 제시할 수 없을 때, 그

가 하는 일이 비록 관습적인 도덕원칙에 일치한다 해도 윤리적 기 준에 따라서 살고

있다는 그의 주장을 우리는 거부할 수 있다.”(황경식, 김성동 역, 1994)는 싱어의 주

장은 윤리적 실천의 본질을 맹목적으로 따 르는 관습에 대한 반성을 통해 스스로 실

천의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는 데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운동선수의 윤리

적 실천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화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근

거의 제 시는 이성적 반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싱어는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정당화의 근거가 이기적인 행위를 옹호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고 덧붙인다. 실

천카지노의 난점은 여기서 시작된다. 싱어의 관점에 따 른다면 운동선수의 실천적

정당화는 ‘승리’라는 이기적 행위에 근거 를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지상주의’의 폐해

와 그것이 갖는 비윤리적 근거를 찾을 수 있게 된다. 실천윤리는 단순히 도덕적 내

용을 설교하거나 비도덕적 행위를 교화하 는 일이 아니다. 아울러 널리 유포된 도덕

적 규범을 무비판적으로 제시, 홍보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착각은 실천윤리와 도

덕적 참여를 혼동하 기 때문에 일어난다. 비도덕적 현상에 대한 개탄과 울분, 그리

고 개선의 노력은 책임의식과 도덕적 능력이 있는 개인으로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

다. 그러나 철학으로서의 도덕은 개인적 참여를 매개로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도

덕적 참여를 한다는 것, 그리고 도덕성이 인간 행위의 무조건 적 질(質)이라는 주장

에 대해 확실한 근거를 제시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 엇을 의미하는지를 논증적으로

해명해야 한다(진교훈, 류지한 역, 1999). 실천윤리는 윤리의식의 저하에 대한 지적

과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당위 성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오히려 더 정밀하고 비판

적인 도덕의 조건을 찾아내는 작업이 실천윤리 본래의 영역이다. 차라리 도덕적 행

위를 실천 하게 만드는 일은 윤리교육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출처 : 실시간카지노사이트 ( https://sdec.co.kr/?p=2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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